[김천=내외뉴스통신] 박원진 기자 = 이 중섭 그는 살아생전 소를 많이 그렸다. 어렸을 때부터 소를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그림 그릴때는 하루 종일 소만 바라밨다고 한다.

아내인 마사코 여사(이남덕)의 증언으로는 소를 관찰하다가 소도둑으로 몰려서 부리나케 도망가야했던 경험도 있었다고 한다.

▲ 이중섭作 Lee_jung_seop ‘황소’ 44cmx51cm 목판 1935~1955년 [ 소장 미라클시티 미술관]
▲ 이중섭作 Lee_jung_seop ‘황소’ 44cmx51cm 목판 1935~1955년 [ 소장 미라클시티 미술관]

이 화백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세간에 화제된 ‘흰소’가 있는데, 이것은 백의 민족이었던 대한민국을 의미했다고 한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소가 말라 그야 말로 피골이 상접해 있는 것을 였볼 수 있는데 당시 6.25전쟁 이후로 먹고 살기 힘들었던 그때 그 상황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이중섭 화백의 그림 ‘황소’는 2006년 35억~45억원 가격대로 경매에 오르기도 했는데, 그는 정작 생전에는 넉넉하지 못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이중섭作 Lee_jung_seop ‘흰소’ 40.7cmx32.0cm 캔버스에유채 1947년 [소장 미라클시티 미술관]
▲이중섭作 Lee_jung_seop ‘흰소’ 40.7cmx32.0cm 캔버스에유채 1947년 [소장 미라클시티 미술관]

그도 그럴 것이 6.25 전쟁으로 인한 직격탄을 맞은 세대인지라 제주도로 피란 간 때의 경험이 창작에 도움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도 이화백 에게는 피난 생활이 그 에게는 그나마 평화로운 삶이였다고 한다.

서귀포시에는 그가 가족들과 피난 생활을 했던 집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 당시 부두 막노동으로 생계를 잇다가 이마저도 건강 문제로 여의치 않아 당시 답배갑에 들어있던 은박지에 그림을 그렸다는 일화 또한 유명하다.

어렵사리 1955년에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신의 전시회를 열었지만, 1년 뒤 서울 적십자병원에서 황달 및 정신병 등이 겹쳐 향년 41세의 나이로 생을 마쳤다.

친구들이 적십자 병원에 병문안을 가보니 며칠 전에 죽은 이중섭의 시체가 침대위에 쓸쓸하게 방치돼 있었다고 한다. 죽은 그의 곁에 있는 것이라고는 병원비 독촉장이 전부였다고 평소에 친한 사이였던 3살 아래의 시인 구상이 그의 시신을 수습해서 장례를 치렀다고 한다.

이 화백의 무덤은 서울시 중랑구 망우동 망우리 공원묘지에 있다.

그는 살아생전에 인정받지 못하고 불행한 삶을 살다가 세상을 떠났지만, 이 화백은 사후에 그 진가를 인정받아 작품이 고가에 거래된다는 점에서 빈센트 반 고흐와 비교되는 대한민국 백의민족의 혼을 화폭에 담은 예술가이다.

이중섭화백의 위(황소) 작품은 생전에 단 한번의 전시회인 1955년 미도파화랑에서 전시된 40여점 중 1개의 작품이다. 이중섭화백이 생활고에 시달리던

시절 명동 일대의 유명한 분들의 도움으로 이룬 전시회라고 한다.

위 작품(황소)는 전시회에 큰 도움을 주신 명동의 유지분에게 드렸고 그 후 단사천회장이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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