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충웅 언론학 박사
최충웅 언론학 박사

[내외뉴스통신] 최충웅 언론학 박사

'국민 MC' 송해 씨 영결식이 오늘 새벽 4시 30분에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유족과 연예계 동료들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길을 함께 했다. 곧이어 운구차는 고인의 사무실과 생전 즐겨 찾던 국밥집, 이발소, 사우나 등이 있는 종로구 낙원동 '송해길'에서 노제를 지냈다.

이어서 여의도 KBS 본관에 들러 제작진 사원들과 '전국노래자랑'을 함께해온 악단이 송해의 마지막 고별 연주로 배웅했다. 고인의 유해는 생전에 제2의 고향이라고 여기던 대구 달성군의 '송해 공원'에 안장된 부인 석옥이 씨 곁에 안치됐다.
 
방송인 95년 인생 항해를 마치고 영면에 들었다. "'땡'이 있어야, '딩동댕'이 있다. ‘땡’을 받아보지 못하면 ‘딩동댕’의 정의를 모른다"며 말년에 부른 ‘내 인생 딩동댕’이라는 곡으로 “이만하면 괜찮아. 내 인생 딩동댕이야."로 장식을 했다. 그는 "내 인생을 딩동댕으로 남기고 싶었던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그의 빈소에는 연일 각계각층 조문객들이 줄을 이었다. 그의 부고를 전하는 인터넷 기사에도 애도 물결이 이어지고, 국내 방송은 앞 다투어 특집프로그램을 내보냈다. 해외 일본 NHK, 미국 AP통신, 중국 신문망 외신들도 애도 기사를 내보냈다.  

그의 인생 95년은 파란만장한 한편의 대하드라마다. 1927년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청소년기를 나라 잃은 암울한 시대 속에서 성장했다. 8.15 광복에 이어 6.25 한국전쟁은 그가 가족들과 생이별로 피눈물 흘린 피난길에서부터 인생항로 운명의 갈림길이었다.

찌들린 가난을 구호품으로 때우던 빈민국에서 산업화를 거쳐 세계선진국 진입과 한류 열풍에 이르기까지, 현대사의 가시밭길을 홀몸으로 헤쳐온 그의 주름살에는 질곡의 한국 현대사가 오롯이 새겨져 있다.  

한 사람이 한 가지 재능을 갖추기도 어려운데, 그는 악극단 무대를 시작으로 가수이자 희극배우, 영화배우, 라디오·TV방송 인기 진행자로 국민MC에 이르기까지 종횡무진으로 무대를 장식했다. 그는 대한민국 대중문화사의 주역으로서 문화예술을 꽃피우며 한국 현대사의 가시밭길을 몸소 헤쳐 온 살아있는 전설 그 자체였다.  

송해 이름 앞에는 여러가지 닉네임 대명사가 화려하다. '국민MC', '영원한 오빠', '일요일의 남자' '딩동댕 인생', '최고령 TV 진행자' 등 이 모두가 그의 인생을 한마디로 대변해주고 있다. 1960년대 구봉서, 배삼룡 등과 ‘웃으면 복이 와요’ 등 인기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국민들에게 웃음과 즐거움을 안겨주었고, TV와 영화 출연을 비롯해 1970년대는 라디오 프로그램 ‘가로수를 누비며’를 통해 전국구 스타 반열에 올랐다. 그후 나이 61세인 1988년 5월에 ‘KBS 전국노래자랑’ 사회를 34년간 이끌며 국민MC로 등극했다.  

그는 서민의 친구이자 국민MC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소탈한 인간미와 자연스러운 진행 능력, 그리고 유머감각으로 대체불가 사회자로 각인됐다. ‘전국노래자랑’이라는 프로그램 자체가 남녀노소가 즐기며 그의 앞에서 마음을 열었고, 서민들과 어울리며 친밀한 오빠이자 형님이고 푸근한 아버지의 이미지로 부각됐다. 그는 마이크 하나로 전국을 누비며 천만명의 시민들을 만났고, 직접 대화를 나눴던 사람은 2만 명에 달한다.  

'영원한 현역 MC' 송해의 소탈했던 삶이 재조명받고 있다. 작달막한 키에 보통사람을 표방하는 소박한 용모는 누구에게나 친근감을 줬다.

95세까지 그가 밝힌 건강 비결은 ‘BMW’였다. “버스(Bus), 메트로(Metro·지하철), 워킹(Walking·걷기)로 움직이는 그는 서울 매봉역 인근 자택에서 사무실이 있는 종로3가역까지 지하철 3호선을 타고 다녔다. 연예인이라면 우선 필수적인 자가용이 없었다. 지방 공연 때도 대중교통수단인 버스나 KTX로 이동했다.

그의 삶 자체가 꾸밈이 없고 소박하기 그지없는 서민들의 삶 자체였다. 길을 걷다가 붕어빵을 사 먹고, 4000원 서민 이발소를 이용했고, 가장 즐기던 음식이 낙원상가 2000원 우거지국이었다.

녹화가 없는 날 오후 네 시 경이면 사무실 근처 대중목욕탕에서 맨몸으로 시민들과 격의 없이 어울렸다. 동네 사람들과 정을 나누는 그만의 생활 방식이었다. ‘전국노래자랑’ 녹화가 있을 땐 미리 하루전에 지역현장에 도착해 대중목욕탕에서 현지 주민들과 소통하며 그 지역의 특산물, 향토문화 등을 탐색한 것도 유명한 일화다.

2003년 보관문화훈장을 받을 당시 수상소감으로 “나는 딴따라다. 영원히 딴따라의 길을 가겠다”고 했다. 2015년 은관문화훈장 수상 당시엔 “대한민국 대중문화 만세!”라고 크게 외치기도 했다. 올해 4월 ‘최고령 TV음악경연 프로그램 진행자’로 기네스 세계기록에 등재됐다.

그렇게 우리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딴따라로 한 시대를 살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조전을 보내 “정감 어린 사회로 울고 웃었던 우리 이웃의 정겨운 노래와 이야기는 국민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아있을 것”이라고 추모했다.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빈소를 찾아 영정 앞에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67년간 방방곡곡을 누빈 그가 그토록 소원했던 고향땅 '황해도 노래자랑'의 꿈을 못 이룬 채  우리 곁을 홀연히 떠나갔다. 이제 하늘나라 별들의 '천국노래자랑'을 진행하시면서 먼저 떠나보내 가슴아파했던 그리운 아드님과 사모님을 다 함께 만나서 이제는 아프지 마시고 편히 쉬십시오.  

 
[최충웅 약력]
경희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경남대 석좌교수
YTN 매체비평 출연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연예오락방송 특별 위원장
방송위원회(보도교양/연예오락)심의 위원장
언론중재위원회 위원
KBS 예능국장·TV제작국장·총국장·정책실장·편성실장
중앙일보·동양방송(TBC) TV제작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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