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갑원 교수
강갑원 교수

[내외뉴스통신] 강갑원 대진대학교 명예교수

 동물의 새끼조차 어미의 가르침이 없으면 성체가 되기 전에 훨씬 많이 도태되었을 것이다. 동물도 새끼에게 생존 기술을 가르친다. 인간의 교육보다는 간단하고 생존에 필수적인 것만 가르친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 바다 가까이에 있는 절벽에 알을 낳아 부화하는 바닷새가 있다. 이 새의 새끼는 부화하여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유 낙하를 하여 앞에 있는 바다에 도달하여야 한다. 그것도 한 번의 비행으로... 육지에 떨어지면 다시는 비상하지 못하고 여지없이 바다 갈매기의 먹이가 된다. 그 새끼는 어떻게 나는 법을 알까? 이때쯤이면 어미는 새끼들에게 어떻게 날아가야 하는지 딱 한 번 시범을 보여준다. 새끼는 이것을 보고 한 마리씩 비행한다. 너무 직 하강하거나 수평으로 비행하면 바다까지 가지 못한다.  

 모든 생물은 생의 초기에는 한 번의 관찰이나 경험만으로도 학습할 수 있다. 생존에 중요한 행동일수록 학습에 걸리는 시간은 짧다. 인간도 정도에 차이는 있으나 이와 비슷하다. 어미의 보호 능력이 약한 동물일수록 이러한 경향이 뚜렷하다. 어떤 행동은 태어날 때부터 할 수 있는 것도 있다. 이것을 본능이라고도 하기도 하고 행동 태세(set)라고 하기도 한다. 바다거북 새끼는 해변 모래 속에서 부화하면 즉시 바다로 질주하도록 행동 태세가 있다. 이들이 질주하는 동안 갈매기가 이들은 기다리고 있다. 아프리카 초원에 서식하는 초식 동물 임팔라나 가젤의 새끼는 출생하자마자 달릴 수 있다. 그래야 살아날 수 있다. 호랑이나 사자 새끼는 그렇지 않다. 스스로 생존할 능력이 없다. 어미가 보호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약 1년이라는 보호기간 동안 어미에게서 생존 수단을 학습하여야 한다. 인간은 이보다 더 길다. 그래서 더 긴 교육과 학습이 필요하다. 

 교육 때문에 부모와 자녀는 모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동물들도 어미의 훈련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인간보다는 새끼에게 훈련에서 자율성을 많이 부여하기 때문이 아닐까? 스트레스는 행동을 통제할 때 발생한다. 불행하게도 인간은 교육에는 통제 요소가 많다. 통제는 개체가 하고 싶을 것을 하지 못하게 하거나 하기 싫은 것을 하게 하는 형태로 나눌 수 있다. 동물은 새끼를 훈련할 때 자율성을 부여하는 대신 그 결과에 대해 책임져 주지 않는다. 인간은 통제를 더 하는 대신 보호자가 대신 책임을 져주는 경우가 많다. 

 인간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녀나 학생을 교육할 때 자율성과 통제라는 두 상반된 행위 사이에서 갈등해 오고 있다. 자율성이라는 말이 상당히 미화되어 좋은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고, 통제성은 나쁜 것으로 각인되어 있는 경향이 있으나 교육에서는 이 두 가지가 모두 필요하다. 자율성과 통제성의 상대적 비중은 중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자율성과 통제의 내용과 방식이다. 자녀의 연령이 많아질수록 자율성을 더 많이 부여해야 한다는 것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부모나 교사들은 자녀의 중의 어떤 행동에 대하여 자율성을 부여하고 통제하여야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통제하여야 하는지 잘 모르는 편이다.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율과 통제의 내용과 방식은 자녀의 연령이나 발달 정도, 가정문화, 사회 문화, 가정의 사회·경제적 여건 등의 조건에 따라 달라야 한다. 다음과 같은 원칙을 유념해 볼만하다. 

 첫째, 자녀나 학생의 연령에 관계없이 기본적으로 통제를 하는 것보다는 자율성을 부여하는 것이 낫다. 자율성은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것이다. 여러 심리학자들의 주장을 종합해 보면 의도의 여하, 욕구의 유형과 관계없이 욕구 충족이 결핍보다는 사람을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 프랭클의 실존 치료, 로저스나 매슬로우의 인본심리학 등에서 지적하는 인간 부적응 행동의 근원의 공통점은 욕구 좌절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자녀에게 “해도 된다.”는 ‘허용 메시지’가 “하면 안된다.”는 ‘금지 메시지’ 보다는 자녀를 건강하게 해준다. 허용 메세지는 자녀로 하여금 자신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게 한다. 사람은 누구나 미래에 자신이 어떤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무의식적이지만 인생계획을 가지고 있다. 일종의 자기 인생 예언 충족이다. 에릭 번(Eric Burne)이라는 심리치료 학자는 이것을 인생각본(life script)이라고 불렀다. 배우가 각본에 따라 연기를 하듯 인간도 자신의 삶의 각본에 따라 살아간다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허용 메시지를 많이 받은 아이는 이후의 삶에서 승리자 각본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금지 메시지를 많이 받은 아이는 실패자 각본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보았다. 금지 메시지는 기본적으로 당사자에게 무능력한 존재, 무가치한 존재라는 암시를 준다. 예를 들면 2세 아이가 밥을 먹을 때 스스로 숟가락질을 하려고 할 때 아이 어머니가 아이가 음식을 흘릴 것을 염려하여 이를 제지하여 떠먹여 준다면 아이에게 금지메시지를 준 셈이 된다. 이것은 자녀에게 너는 ‘할 수 없어’라는 메시지를 준다. 숟가락질이 서툴더라도 아이에게 이것을 허용하면(자율성 부여) 아이는 시행착오 과정을 통해 결국 숟가락질에 성공하게 된다. 이를 통해 아이는 숟가락질을 빨리 배우는 것은 물론 결국 성취감을 발달시킨다. 옷을 더럽히거나 밥상이 어지럽혀지는 일은 문제가 아닌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둘째, 자율성 부여와 통제 간에 갈등이 생기면 가능한 자율성 부여 쪽을 택하는 것이 좋다. 갈등이 생긴다는 것 자체가 자율성을 부여하여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자녀가 어떤 시험을 잘 보기로 약속하였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다. 자녀가 어느 날 갑자기 헤어 스타일을 바꾸거나 머리 염색을 하였다. 이 때 허용과 통제 사이에서 갈등이 생긴다면 수용하는 것이 낫다는 뜻이다. 갈등이 생겼다는 것은 이미 큰 문제가 되지 않는 행동이라는 것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셋째, 허용해서는 안 되는 행동의 기준을 가지고 통제하여야 한다. 어느 가정의 자녀를 막론하고 허용해서는 안 될 행동이 있다. 불법 행위, 반윤리적 행위(패륜, 공공질서 훼손, 욕설 등), 심각한 신체적 정신적 위해 초래 행위(마약, 과도한 음주 등)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돌이킬 수 없는 후과를 낳는다. 분명하고 단호한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넷째, 가정마다 가족 규칙을 통해 통제해야 할 행동을 정해 두어야 한다. 수시로 기준이 바꾸어 적용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행동은 가족과 서로 관련이 있다. 가족 간의 공간 사용 규칙, 가족 구성원의 역할 배분, 가정의 공공 규칙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러한 규칙은 구체적일수록 좋다. 다만 긴요하면서도 최소한의 규칙을 정하는 것이 좋다.  

 다섯째, 일시적으로는 부정적이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긍정적 결과를 낳는 행동은 허용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면 날씨가 추운데 자녀가 옷을 얇게 입고 나가겠다고 우기면 허용하는 것이 좋다. 자녀 뜻대로 하여 설령 자녀가 감기에 걸리더라도 큰 낭패는 아니다. 어린 아이가 길을 내 달리면 조심하라고만 말하면 된다. 뛰지 못하게 할 필요는 없다. 넘어져 무릎이 좀 까져도 큰 낭패는 아니다. 이 경험을 통해 넘어지지 않는 방법을 터특한다. 자녀에게 숙제를 하라고 했으나 자녀가 안 하고 학교로 가더라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교사에게 꾸중을 듣게 하는 것이 오히려 좋을 수 있다. 자녀가 공부를 열심히 안 하는 경우에도 이와 비슷하다. 간헐적으로 일깨워주는 방식으로 개입할 수 있다. 부모 입장에서는 곧 바로 행동 변화가 없으면 답답하겠지만 장기적 실패 경험을 통해 교훈을 얻게 할 준비를 하는 것도 괜찮다. 특히 자녀가 고등학교 학생 정도라면 더욱 그러하다. 강압적으로 행동을 교정하려다가 자녀와 충돌하는 부작용보다는 나을 수 있다.      

 여섯째, 부모들은 자녀의 연령과 발달 수준에 맞게 어떤 행동에 대하여 자율성을 부여할 자에 대하여 매년 구체적으로 정해 둘 필요가 있다. 이것은 부모 자녀 간에 충돌을 최소화하는 길이다. 부모가 자녀 숙제 검사는 어느 시기까지 할 것인지(필자 초등생까지 추천), 자녀에게 옷은 사주되 옷의 스타일은 언제부터 자녀에게 맡길 것인지(중학생부터 추천), 이발이나 미용 비용은 부모가 부담하지만 헤어스타일은 언제부터 자녀에게 맡길 것인지(중학생부터 추천), 공부를 스스로 하도록 언제부터 맡길 것인지(고등학생부터 추천)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기준을 가지고 자녀를 통제하고 자율성을 부여하여야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일곱째,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 통제나 바람직한 행동의 권유는 지속적이면서도 수용 가능한 방식으로 하여야 한다. 단번에 행동이 바뀌는 경우는 없다. 기본적으로는 해야 할 행동과 하지 않아야 할 행동을 지속적으로 알게 해주는 것이다. 특히 영유아기나 아동기에 있는 자녀에게 더욱 그러하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무엇을 해야 하고 하지 않아야 하는지 모른다. 부모가 이것을 게을리하면 자녀의 도덕성이나 양심 발달은 지체된다. 그 이후 시기에는 이치를 알려도록 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지적으로 성숙하였기 때문이다. 그 방법은 일방적으로 설명해주기보다는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를 스스로 생각해보게 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부모가 자녀의 행동을 간혹 지나쳐 줄 수는 있어도 모르는 척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부모는 인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도록 해 주어야 자녀가 스스로 행동을 변하려고 한다. 어떤 이유이든 통제의 수단으로 언어폭력이나 체벌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 자극에 반복 노출되면 그 자극에 둔감해져 효과가 없어지게 된다. 변화는 자녀 스스로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kangkab@daejin.ac.kr

[강갑원 교수]
중앙대학교 대학원 교육학 박사(교육심리학)
대진대학교 교육대학원장(역) 
대진대학교 국제교류협력대학장(하얼빈캠퍼스)(역)
대진대학교 교원연수원장(역)
한국영재교육학회장(역)
대진대학교 명예교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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