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뉴스통신] 나는 여름이라는 계절을 아주 좋아하는 편이다. 방학이면 충북 영동에 있는 외갓집에 가고는 했는데, 반딧불을 볼 수 있을 정도로 깨끗한 곳이었다.

나에게는 외갓집을 꼭 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는데, 내 허리까지 올 정도로 크게 잘 자란 봉숭아가 지천으로 있었기 때문이다. 동생과 나는 다홍색, 흰색, 분홍색의 봉숭아 꽃잎과 이파리를 한 움쿰 따 와서는 돌로 찧어 손톱에 올려 놓았다. 그러면 금새 손톱에는 불그스레한 물이 들고는 했다.

엄마는 백반을 가져다가 봉숭아와 함께 찧어 주셨다. 백반을 넣고 함께 찧으면 봉숭아물이 훨씬 새빨갛게 들었다. 엄마는 잠들기 전 동생과 나의 손톱에 도톰하게 얹은 후 비닐 봉지를 잘라 손가락을 감싸고 실로 묶어 주셨다.

그럴때면 언제나 조금 들뜬 기분에 잠을 이루기 어려웠다. 아니, 실로 동여맨 손가락이 불편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아침에 일어나면 열 손가락 중 두 세개의 비닐은 벗겨지고 없다. 얼른 비닐을 벗겨내고 보면 손톱뿐만 아니라 손가락 끝에도 빨간 물이 들어 있었다. 손에서는 며칠간 봉숭아 풀냄새가 진동했다.

봉숭아 꽃물이 첫 눈 올 때까지 손톱에 남아 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 진다는 친구의 말에 언제올지도 모르는 첫 눈을 기다리며 손톱을 아껴 깎았다. 언젠가 한번은 첫 눈이 올 때 새끼 손톱에 아주 희미하게 꽃물이 남아 있었는데 아마도 초등학교 5학년일 것이다. 봉숭아 꽃과 첫사랑에 대한 말은 거짓말이었지만, 그런 것 따위 알 리 없는 12살의 나는 당시 좋아하던 연예인을 떠올리면서 친구에게 실실 웃으며 자랑했었다.

외갓집 마당에는 살구나무, 대추나무, 감나무가 있었다. 과일이 맛있는 지역이라 그런지 마당에서 딴 과일도 아주 달았다. 군데군데 벌레먹은 과일을 혀가 아릴 때까지 따 먹었다.

밤이면 동그란 모기향이 뱅글뱅글 타 들어가는 것을 보며 엎드려서 숙제를 하고는 했다. 무서운 이야기가 잔뜩 있었던 공포특급 같은 책을 읽고는 밤에 화장실이 무서워 못 간 적도 있었다. 그러한 책 중에는 3D 안경이 있어서 책을 보면 무서운 그림이 입체로 보이는 것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한 책이다.

입술이 파래질 때까지 계곡물에서 물놀이를 하고 나오면 엄마는 옥수수며 고구마 따위를 삶아서 주셨다. 계곡물에 차게 식힌 과일과 함께 계곡에서만 먹을 수 있었던 아빠가 끓여주신 라면도 잊지 못할 맛이다. 언제나 팅팅 불은 라면이었는데도 별미였고, 더 먹고 싶었다.

비오는 밤 라면을 끓이다가 여름 방학 생각이 났다. 짓이긴 봉숭아 꽃물 냄새같은 축축한 땅냄새가 나서 그런가 보다. 어른에게도 방학이 있었으면 좋겠다. (작가의 양해를 얻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게재합니다)










이윤정 여행작가 겸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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